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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문학

미친남자의 시집

뾰족한 연필

난 화가 날 때마다 연필을 깎는다.
뾰족한 연필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아프다.

뾰족한 연필일 수록 더 진하게 나오지만
그만큼 더 쉽게 부러진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태어나서 처음 지은 시다. 자꾸 화가 날 때마다 험한 말을 하는 내 자신이 부끄럽고 친구들에게 상처를 주어서 미안했다. 앞으로는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고싶어서 욕을 연필 심에 비유하여 시를 지었다. 욕을 하면 강하게 감정을 전달하지만 그만큼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나를 약하게 만든다.

수학 문제

너를 처음 보았을 때
내 머릿속은 복잡하여
온통 혼란으로 가득 찼다.

그러다 너를 바라보고 또 바라보고
비로서 너를 알게 되었을 때
내 마음은 행복으로 가득 찼다.
짝사랑

내가 받은 사랑만큼
돌려줄 수 없는 슬픔을 아십니까?

나는 당신을 통해 세상을 배웠고
영원한 짝사랑을 배웠습니다

너무나도 그대를 사랑하지만
제가 받은 사랑들을 다 돌려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대가 하는 것은 짝사랑입니다

어버이날 부모님을 생각하며 쓴 시다. 부모님은 정말 많이 나를 사랑하시고 잘해주신다. 나도 부모님을 존경하고 사랑한다. 하지만 가끔 시간이 얼마나 지나든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는만큼 내가 부모님께 사랑을 줄 수 없을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부모님을 사랑하고 감사하지만 나는 사랑하는 것들이 부모님말고도 많다. 나는 내가 하고있는 일을 사랑하고 집중하며 많은 시간을 쓴다. 주말에는 친구들과 놀거나 여자친구를 만나기도 한다. 여행 다니는 것도 좋아한다. 부모님은 오직 나만 사랑한다는 생각이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만큼의 사랑은 부모님께 줄 수 없다. 그래서 슬펐고 가끔은 부모님도 좋아하는 일을 하거나 자기만의 시간을 여유롭게 보내며 사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빛 핑계

달이 떴다고 전화를 할까
꽃이 피었다고 전화를 할까
내 마음에 수백번의 달이 뜨고 지고
꽃이 피고 지다가
산 아래 꽃과 달을 품은 마을을,
간절한 이 그리움들을,
사무쳐오는 이 연정들을
달빛 핑계로
당신께 보냅니다

갑작스레
강변에 달빛이 곱다고
전화를 합니다.
흐르는 수화기 너머로 눈부시게 그리운 내 마음
보내봅니다. 

김용택 시인의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를 읽고 전화를 하는 사람은 얼마나 고민하며 전화를 걸었을까하는 생각이 문득들어서 화자를 바꾸어서 한 번 써보았다. 

전설의 노란 마후라

합장주에는 노란 마후라의 영혼이 잠 들어있다
정의를 위해 17대1로 싸웠다는 전설의 노란 마후라
 
그 무섭고 강한 노란 마후라는
이제 내 오른 손목에 잠들어 있다.
 
노란 마후라는 합장주가 되어
이제는 돌이 되어 나와 함께 바둑을 둔다.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하여 조용히 이야기한다.
자, 백 돌 잡으시고
 
저는 삶이 혼란스럽고 무섭습니다. 앞이 잘 보이지 않고 뭐가 맞는지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삶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방황하는 저 자신이 밉습니다.
넉 돌 깔겠습니다.
 
삶의 정답은 없다. 단지, 너의 선택에 책임을 지고 살아가는 것뿐
너도 언젠가 합장주에 잠든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그렇군요
병이 없어 삶을 고민하는 저의 영혼도
언젠가 합장주에 잠들겠지요
 
제 손목의 합장주가 끊어지는 그 날엔 저도 다 잊겠습니다.
삶도 죽음도, 그리고 후회까지도
한 수 잘 배웠습니다

나는 어릴적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할아버지 집에서 자랐다. 심심할 때면 할아버지와 바둑도 두고 장난치고 그랬는데 중학교 1학년 때 할아버지가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그 때는 사춘기라서 맨날 게임만하고 할아버지랑 이야기도 잘안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 생각해보니 그 때 내 모습이 너무 후회되고 죄송하고 할아버지가 보고싶어졌다. 어릴 적에 할아버지가 좋은 말도 많이 해주시고 잘못된 행동을 할 때면 혼도 내고 예의도 가르쳐주셨다. 요즘 가끔 힘들 때면 할아버지에게 물어봤으면 어떤 답을 해주셨을까하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바둑을 두며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시를 구성했다. 그리고 내가 항상 끼고 있는 합장주는 할아버지가 끼던 것인데 할머니가 주셨다. 나는 나태해질 때면 합장주를 보며 할아버지를 생각하곤 한다. 노란 마후라는 할아버지의 젊었을 적 별명이다. 

존재자

나뭇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솜사탕들은 그 위에 포개져있다.
나는 그것을 가만히 바라볼 뿐이다.

먼지같은 벌레들이 자유로이 맴돌고
그 중 하나가 나의 창으로 들어온다.
나는 그것을 가만히 바라볼 뿐이다.

나는 무엇을 찾으려하는 걸까
하이데거는 무엇을 보았을까

내게는 당연한 존재들로부터

마르틴 하이데거의 철학에 영감을 받고 쓴 시다. 하이데거는 인간과 자연 그리고 모든 사물을 존재자로 표현했고, '존재'는 그것들이 가진 고유하고 성스러운 성격을 말한다. 하지만 그 성스러움이 오늘 날에는 달아나버렸다고 한다. 예를 들면 인간, 자연(바람, 물, 불, 꽃, 동물)등을 우리는 성스러운 것으로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수단, 에너지 원으로 바라본다. 우리는 일상에 쫓겨 존재자들에 관심을 가지지 못한다. 학업, 일과 관련되게 아니라면 신경쓰지 않기 때문에 존재자들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존재자를 성스러운 것으로 경험할 때 우리는 새삼 '존재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고 놈이 뭐라고

고 놈이 뭐라고 깊게 빨고 들이마시면
세상만사 다 해결되나
고 놈이 뭐라고 깊게 빨고 내쉬면 어려운 수학 문제가 풀리나

4년전 여름, 내가 가장 슬펐던 날
어른은 울면 안되서, 하늘이 마음을 대신 해주듯 비가 무수히 쏟어지던 날
나는 차가운 진흙에 납작 엎드려 절을 했다
옆에 할아버지 한 분 계셨는데, 내게 말했다
"니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지, 나는 친구 하나 또 잃었네"
친구가 하나 씩 계속 사라진다며 중얼거리셨다

고 놈이 뭐라고 깊게 빨고 들이마시면
밀린 숙제를 다 끝내나
고 놈이 뭐라고 깊게 빨고 내쉬면
안 들리던 영어듣기가 들리나

오늘은 나에게  고놈이 두 번째로 찾아온날
제발 다시는 찾아오지않길 간절히 기도한 날
어른은 울면 안되서 엄마는 담담히 내게 말해줬다
처음엔 믿기지 않았지만 나중에 서러움 밀려오드라
마치 고놈처럼.
나는 오늘 할아버지 또 잃었다.

할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할아버지 친구분이 가끔 오셨다. 할아버지랑 똑같이 폐암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슬퍼서 시를 썼다.

지저분한 마음

그는 겁이 많다
꽉막힌 얼굴로 분주히 길을 걷는다
맞은 편에 지저분한 털뭉텅이가 서 있다.
그는 재빨리 걸음을 돌린다. 그는 걱정이 많다.
그러나 그의 털뭉텅이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그러자 털뭉텅이를 번쩍 들어올린다.
지저분한 털뭉텅이는 저벅저벅 쫓아온다.
걸음을 아무리 돌려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걸어올 뿐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팔이 저려온다. 공포감은 그를 엄습해온다.
털뭉텅이는 그의 품에서 발버둥친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지저분한 털뭉텅이는 고개를 획 돌린다.
조금 슬픈 듯 체념한듯한 털뭉텅이는 점점 작아진다.
그도 점점 작아진다.
그는 털뭉텅이를 그의 품에서 내려 놓는다.
또 꽉막힌 얼굴로 분주히 길을 걷는다.

 우리집 강아지 대박이와 산책할 때 있었던 일을 쓴 시다. 대박이랑 산책하고 있었는데 앞에 지저분한 강아지가 한 마리 있었다. 혹시 대박이랑 싸울려고하면 어떡하지하고 무서워서 도망가려는데 그 강아지가 계속 쫓아왔다. 그러다가 슬픈 얼굴을 하고 고개를 획 돌리며 반대길을 걸어갔다. 집에 오는데 그 표정이 계속 떠올랐다. 그 강아지는 누구도 받아주지 않고 버림받아서 친구를 사귀고 싶었던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저분했던 건 내 마음이었다. 시 형식은 살짝 기형도 시인 느낌으로 쓰고싶어서 이렇게 썼는데 역시 따라잡을 수 없는 것 같다.

스마트 시대

스마트 시대에는 말이야
아빠가 학교마친 아들을 데리러오지 않아도 돼
GPS가 아들이 잘오고 있는지 확인해주거든

스마트 시대에는 말이야
할머니의 거짓동화를 믿지 않아도 돼
사진이 없다면 그건 다 뻥이니까

그리고 또 있잖아
뭐든지 다 아는 할아버지가 없어도 된다?
세상 모든 지식을 손가락 몇 번 움직여서 알 수 있거든

제일 좋은 건 말이야
지금이 몇신지, 대도 슈퍼가 어딘지 묻지 않아도 돼
너의 하나뿐인 똑똑한 친구가 항상 곁에 있거든

어때? 스마트한 세상
행복하지?

 요즘 개같은 스마트폰에 갇혀서 사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물론 나도 포함. 뻔한 말이지만 세상엔 아름답고 재밌는게 많다. 쓸데없이 스마트폰으로 계속 자극적인 걸 찾는건 그 '순간' 잠깐만 재밌고 시간을 죽이는 행위다. 우리는 장기적인 '진짜' 행복을 찾아야한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 편리함을 찾아 기계에 의존한 나머지 함께 사는 법을 잊어버리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IT분야를 전공하고 공부하는 학생이지만 난 절대 기술에 의존하지 않을 거다. 기술을 공부하는 것이 아닌 사람을 먼저 공부하고 기술은 두 번째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기술,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내 목표다. 또한 나도, 우리 가족들도. 조금 느려도 상관 없다. 길을 돌아가도 상관없다. 함께 가는 길이라면 난 그게 더 행복할 것 같다. 난 그런 제품을 개발할 거다.

시를 쓴다는 건

시를 쓴다는 건 지금 나의 기억과 감정을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다는 말

화가가 물감을 고르고 섞듯
단어 하나하나 신중히 고르고 배열하는 일

지쳤을 때 꺼내보며
웃음 짓고 눈물 흘리는 짓

그리고 다시 일어나 하루를 살아가고
나는 또 다시 한 편의 시를 쓰고

먼 미래에 나의 인생을 돌아보았을 때
나의 인생은 여러 편의 시가
아니, 한 권의 시집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뭔가 깨닫거나 감정의 큰 변화가 있으면 시를 쓴다. 그 순간을 오래 기억하며 보관?하고 싶다. 이렇게 시를 쓰다보면 내가 어른이 되고 할아버지가 되었을 때 나의 시들은 내 인생을 설명해줄 것이다. 그래서 나의 인생은 하나의 시집이라는 생각을 했다.

노력의 정도

내가 하고 있는 건 노력일까
내가 존경하는 그들은 어떤 노력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

나는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내가 진심으로 원하고 추구하는 건 무엇인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내가 부끄럽다
유혹과 고통을 버텨내지 못하는 내가 부끄럽다
지난 2년의 내 자신이 부끄럽다

그들도 이토록 부끄러운 적이 있었을까
몇 백번의 마지막 다짐을 하고 또 다시 마지막 다짐을 하는 나.
더 이상 부끄럽지 않은 내가 되고싶다.


난데없이 총알이 쏟어지자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다
질서를 지킵시다!
단상 위에 정의로운 남자가 소리쳤다

단상 아래 손과 발들은 여전히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었고
남자는 눈물을 흘리며 절규하였다

사람들의 시선은 일제히 그를 향하였고
그의 뜨거운 눈물과 사랑이 분노와 혼란을 멈추었다

다시 한번 총알이 쏟어지고 뜨거운 액체는 멈출 줄 몰랐으나
약속대로 손과 발은 끝까지 멈추었다.

놀라운 사실이 있었으니
단상 위의 그 남자는 너무나도 깨끗했다
마치 다른 세상처럼

역시 그는 신이 분명했다
나에게 보내는 당부

술에 취한 아버지는 나긋한 서울 말씨로 하루를 묻고 레코드를 무대에 세운다
30년을 기다린 레코드는 오랜만이라며 약간의 어지러움을 호소하였지만
그 음악 여전히 아름답다

레코드에 새겨진 아버지의 기억
새벽부터 나서기위해 술에 취해 잠에 들어야했던 아버지
돈 몇푼 벌기위해 허벅지 꼬집어 가며 밤새 페달을 밟아야했던 아버지

그러니 술없이 잠 못드는 아버지를 너무 꾸중하지 말 것이다
그러니 늦은밤 잠 못드는 아버지의 시린 무릎 모른채 말 것이다

과거의 영광을 떠들어봤자 흘러가버린 아버지의 청춘
그리고 그깟 돈 몇푼 없어 포기해야 했던 아버지의 꿈

그러니 당신, 이 모든 것이 단지 아버지의 술주정이라 비웃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버지의 버스에선 팝송 대신 트로트가 흘러나왔고
레코드 대신 타이어가 시끄럽게 돌아갔다
그 대신 아들놈은 돈 걱정없이 꿈을 꾸겠지

한 아버지의 이야기 감상하셨고
이어지는 음악은 잭슨 브라운의 로드 아웃입니다.
당신, 잠자코 감상하며 커피 한잔 하시면 된다
집을 나설 때는 당부대로 꿈을 쫓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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